양승호 감독(이하 양) = "오랜만입니다. 전창진 감독. 현장 복귀를 축하합니다."
전창진 감독(이하 전) = "건강하십니까. 선배님. 저는 다가올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제 곧 전지 훈련에 돌입하다 보니 챙길 게 많습니다."
한여름 무더위가 아직 한창 기승을 부리던 여름날, 강남의 골목길에서 두 명의 지도자가 손을 맞잡았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오래 몸담았던 야구계를 떠난 ’야인’ 양승호(59) 전 롯데 감독, 그리고 오랫동안 떠나있던 농구코트에 우여곡절 끝에 복귀한 전창진(56) 전주 KCC 감독이었다. 각각 야구계와 농구계에서 지도자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이들은 절친한 선후배인 동시에 한순간 '밑바닥'으로 추락했던 경험을 공유하는 사이다. 일간스포츠는 창간 50주년을 맞아, 지도자로서 가장 뜨거웠던 온도를 지녔던 두 사람이 마이너스의 시간을 지나 0도의 경계에 선 지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서로 허심탄회하게 나눈 이야기들인 만큼 질문과 답이 아닌 두 사람의 대담 형식으로 풀어냈다.
양승호( 이하 양)= "우리 과거에도 모 언론사 인터뷰 자리에서 만나 친분이 깊어졌는데요. 다시 인연이 닿았네요."
전창진(이하 전) = "맞습니다. 그 전까지는 친분이 있는 선후배(고려대 3년 선후배. 양승호 전 감독이 선배다) 정도였죠. (인터뷰)이후 현역 시절에 스타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프런트에서 경험을 쌓고 현장 지도자까지 맡게 된 공통점 덕분에 통했죠."
양 = "KT 농구단 감독을 맡으실 때는 같은 연고지(부산)에서 지도자를 했죠. 당시에 롯데 자이언츠 야구 선수들에게 밥도 많이 사줘서 제가 다 고마웠습니다."
전 = "제가 야구에도 관심이 깊어서요. 양 감독님 배려 덕분입니다."
양 =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몰라보게 홀쭉해진 것 같아요."
전 = "지난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됐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야구계 저변 확대에 힘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야구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서 그러는데 운영하시는 에이전시는 경쟁이 치열한가요."
양 = "대형 에이전시는 규모가 크죠. 저희 디앤피파트너는 이제 시작입니다. 현재 선수는 60여 명이 소속돼 있어요."
전 = "그 정도면 큰 규모가 아닌가요."
양 = "회사 규모가 반드시 소속 선수 숫자와 비례하지는 않아요. 연봉 2700만원을 받은 신인급 선수들이 많거든요. 장비 스폰서가 없는 친구들을 지원하다 보니 아직은 수익보다 지출이 더 많아요."
전 = "그동안 한국 프로 스포츠에는 선수 개인 에이전트 제도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성패를 떠나 바람직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과거에 후배 농구 지도자에게 선수협회가 필요하다고 피력한 적이 있죠."
양 = "올해는 프로야구 출범 38년 만에 경조사 휴가가 도입됐어요. 선수도 시즌 중에 가족의 일원으로서 도리를 할 수 있게 됐죠. 팬들도 지지를 했고요.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봅니다. 팬 서비스와 경기력 향상이 동반돼야 합니다. 권익만 내세우다가 외면하면 안 되거든요."
전 = "같은 생각입니다. 프로 농구도 휴식 보장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2016~2017시즌 직후부터 마지막 경기 이후 60일 동안 단체 훈련을 금지했다.) 휴식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문제는 이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점이죠. 보장된 자율의 진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선수도 있어요. 스스로 훈련에 맞춰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부상이 생긴다고 봅니다."
양 = "프로야구도 2017년부터 비활동기간을 보장하고 있어요. 스프링캠프 시작이 늦춰졌죠. 처음에는 우려가 있었지만 선수들이 달라진 일정 탓에 문제가 생기기 않도록 자발적으로 적응하려는 노력을 보였고요. 농구는 주축 선수의 부상 이탈이 치명적인 걸로 압니다. 팀과 자신을 위해 달라지는 선수가 많을 거라고 봅니다. 물론 지도자의 유도도 중요할 것이고요."
전 ="저도 KCC 감독이 된 뒤 이 점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체력 훈련을 소화하는 동안에는 이탈자가 없었습니다. 다행이죠."
◇ 다른 이유, 같은 처지...신뢰를 잃다
양 = "그런데 전 감독이 나와 묶여서 인터뷰를 하면 안 되지 않나. 나는 전과자인데(쓴웃음. 셀프디스는 양 대표의 특기다)."
전 = "저를 향한 시선도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건 저도 압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던 두 사람의 대화는 양 감독이 던진 한 마디에 잠시 얼어붙었다. 양승호 감독은 감독을 맡던 시절에 입시 청탁과 함께 금품 1억원을 수수한 혐의가 인정되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역대 롯데 감독 가운데 최고 승률을 기록했고, 특유의 소통 리더십으로 선수단의 지지를 받았다. 이 전력으로 인해 그의 현장 복귀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롯데에 새 사령탑이 필요할 때마다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전창진 감독은 프로농구 ’우승 청부사’로 불리던 명장이었다. 원주 TG삼보와 동부(현 원주 DB) 사령탑 시절 챔피언결정전 3회 우승에 부산 kt 시절에도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감독상도 다섯 번이나 수상했다. 그러나 2015년 승부조작과 불법 스포츠 도박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당시 새로 지휘봉을 잡았던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직에서 자진사퇴했다. 이후 불법 스포츠 도박과 승부 조작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에 따른 무혐의 처분을 받고, 단순 도박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 판결을 받으며 올 시즌 KCC를 이끌게 됐다.
양 = "당시에도 난 변명을 하지는 않았어요.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연락이 온 기자들이 ’돈을 받았냐’는 질문에 바로 인정했고요. 대학 야구부에 1년 예산이 4억원인데 학교 지원은 2억원이었어요. 학교에서 예산 편성을 하지 않았으니 학부모에게 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날씨 탓에 국내 전훈을 선택할 수도 없던 상황이었고요. 나를 고대 감독에 추천한 이들조차 ’이전 감독도 이런 상황에서 팀을 운영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후원을 받기 위해서 뛰어 다녔죠."
전 = "소명은 하신 건가요."
양 = "후배들을 위해 쓴 돈이라고 했죠. 실제로 그랬고. 다시 프로 무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문제가 될 일을 고의로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돈을 주는 학부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죠. 조사를 받을 때도 돈을 받았는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요. 나도 알죠. 용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범법 행위를 한 게 맞습니다."
전 = "저도 다시는 농구와 인연이 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우승 반지, 감독상, 대학 시절 받은 상들을 모두 버리기도 했고요."
양 = "등록 불허 징계가 철회된 날(7월 1일), 눈물을 참지 못한 것을 압니다."
전 = "그동안 받은 오해를 모두 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4년 동안 쌓인 설움이 북받쳐서 얘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건 사실입니다. 한 번 오해를 받다 보니까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같은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았어요. 내 얘기를 듣기 위해 노력한 기자도 있었죠. 그러나 대부분은 제대로 연락을 시도하지도 않고 그저 내가 숨었다고만 여겼죠. 이후 두문불출했어요. TV를 켜면 내 얘기가 나오는 것 같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 같았죠. 그래서 결국 여관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어요."
양 = "나도 어떤 마음인지 알죠. 지난해는 한 선수가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어요. 식장에서 정말 떨렸죠. 내 전과 이력이 양가 부모님께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종종 나와 일을 하려고 찾아 오는 이들이 있어요. 항상 묻죠. ’포털 사이트에서 나를 검색은 해봤느냐’고. 나와 함께 일한다는 이유로 괜히 비난받은 사람이 나올까 의식하지 않을 순 없었죠. 그런데 전 감독은 무혐의, 무죄 판결을 받은 뒤에도 달라지지 않은 건가요."
전 = "사실 인터뷰조차 조심스럽죠. 저 혼자 욕을 먹는 건 괜찮은데, 기사를 쓴 기자까지 피해를 보니까요. KCC 감독으로 선임되는 과정도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그림은 아닙니다. 처음에 최형길 KCC 단장님이 저를 불러 주셨을 때는 ’구단에 와서 선수들을 도와주고 호흡하면서, 너도 다시 사람답게 쇄신하라"는 의미셨죠. 사실 구단에서도 제가 벤치에 앉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재정위원회에서 무기한 등록 자격 불허가 철회되면서 자연스럽게 된 것이죠."
양 = "팬들의 불신도 여전하죠. 그래도 다시 출발점에 섰습니다."
전 = "간혹 ’힘내라’는 말, ’기대한다’는 말을 해주는 KCC팬분들이 계십니다. 정말 감사하죠. 여전히 시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덮어 놓고 비난부터 하시는 팬들의 생각을 당장 바꿀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정받아야죠. 다시 돌아온 지금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있습니다. 양 감독님께서도 다시 야구계에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양 = "출소 뒤 사흘 만에 미국 시애틀로 떠났어요. 허송 세월을 보냈죠.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싶었고 비로소 정신을 차리게 됐습니다. 이후 2014년 말부터 베트남에서 물류 회사를 차리고 운영과 투자를 했죠. 이 시점까지는 야구를 돌아보진 않았어요. 그런데 2016년 말에 파주 시장이 3억원을 지원을 할테니 독립 야구단을 만들어 운영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속죄를 하는 마음으로 수락했죠. 시장이 바뀌면서 운영 지원이 되지 않았지만 현재 명예 감독을 하고 있고요. 이후에는 후배들과 야구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눈높이·고참·그리고 선입견… 그들이 말하는 ’리더십’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던 두 지도자의 열정 온도가 우여곡절 끝에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불미스러운 일로 대중의 지탄을 받았고, 스스로도 복귀를 비관했다. 그러나 속죄할 기회를 얻었다. 그동안 밖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야구 그리고 농구계. 그들이 마지막으로 현장에 있을 때와 변화도 크다. 외부에서 자신의 지도자 인생을 돌아보고 성찰할 시간이 있었다. 정체성은 여전히 지도자다. 일간스포츠는 다양한 리더십에 대해 ’할 말’ 많은 양 감독과 전 감독의 지론을 들어봤다.
전 = "감독님께서는 선수단을 이끄는데 어떤 지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나요."
양 = "내 지론보다는 현재 추세 속에서 느낀 아쉬운 점을 얘기하고 싶어요. 저는 고참을 등한시 하는 팀은 성공할 수 없다고 봐요. 다수 팀이 기량이 비슷한 베테랑과 신인급 선수가 있으면 육성을 선택하죠. 그러나 베테랑은 선수단 내부에서 너무 예민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전 =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면."
양 = "고참급 선수는 기량이 떨어지면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죠. ’내가 안 되는구나’하고 인정하면 그 시점부터는 후배들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강제로 기회를 빼앗으면 뒤에서 무게나 잡고 있을 가능성이 커요. 젊은 선수들은 감독, 코치보다 고참 눈치를 더 봐요. 팀 분위기도 안 좋아지죠."
전 = "야구에도 관심이 많아서 지켜보는데, 다수 구단이 리빌딩을 내세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죠."
양 = "정작 성적이 좋은 팀, 강팀은 고참 활용도 잘 합니다. SK는 김강민이나 나주환을 쓰면서 힘도 실어 주는 것 같아요. 리그 1위라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다수 베테랑은 팀을 떠나기 전까지 무엇이라도 남기려는 의지가 큽니다."
전 = "저도 고참급 선수들이 팀의 분위기를 크게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베테랑급 선수들이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면서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면 그 팀에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따라갑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미팅을 통해 대의와 명분을 설명하고, 그들에게 더 많은 훈련량을 부여합니다. ’힘들면 말을 해달라’, ’그러나 훈련 시간만큼은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의욕적으로 해줘야 한다’고 말해주죠."
양 = "올 시즌 주목할만한 선수가 있을까요."
전 = "신명호 선수가 반쪽이 됐습니다. 정말 잘 따라와줬어요. 그리고 제가 인성을 많이 보는데, 유현준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번 시즌 가장 중요시하는 선수가 됐어요."
>>[창간 50 양승호·전창진 대담]②에서 계속
김희선·안희수 기자